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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해체

[음악] 앨범: 사랑으로

밴드 혁오

나만 알고 싶은 가수의 대표주자였던 혁오. 힙스터라는 단어를 시각화한 그들의 행보에 대중은 열광했다. 전작인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서 숱하게 사랑을 강조했던 혁오는 2020년을 맞이하는 앨범에도 '사랑으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눈에 띄는 점은 숫자를 통해 앨범명을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혁오는 앨범을 작업할 당시 리더 오혁의 나이로 앨범 제목을 정해왔다. 자신들의 청춘을 기록한 앨범이자 20대 청춘이 겪는 여러 감정을 담은 앨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청춘, 숫자에 얽매이지 않았다. 청춘에서 시야를 넓혀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계층 간의 갈등, 혐오를 위한 혐오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에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절제된 감정으로 읊조렸다.

화합과 사랑을 주제로 한 점은 앨범 제목과 함께 기존과는 다른 앨범커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기존의 앨범커버들은 노상호 작가가 맡아서 작업했다. 이번 앨범커버는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볼프강 틸만스와 작업했다. 여러 종류의 식물을 찍은 앨범커버로 의미를 모르고 본다면 단순한 식물 사진이지만 다양한 식물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를 알아차릴 수 있다.


앨범 해체

 

혁오가 선보인 앨범 중 가장 편안한 앨범이다. 실제로 모든 트랙이 타이틀곡인 앨범으로 6곡의 트랙이 이어져 앨범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트랙이 되었다. 각각의 트랙이 한 가지 서사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록곡을 모두 들어야 비로소 앨범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이전 앨범들과 분리하고 싶었어요. [사랑으로]는 그 전 앨범과 비교했을 때 저희의 태도나 대하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이를 정의하기위한 무수한 시도가 있었다. 혁오는 각각의 트랙으로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묘사했고 트랙들을 하나의 앨범으로 묶어 사랑의 본질을 청각화했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도구들이 필요하다. 수식에 의한 과학적인 정의보다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랑을 정의하려는 혁오의 시도는 머리보다는 가슴을 통해서 의미가 확고해진다.

1번 트랙 Help에서부터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보사노바 리듬에 서정적인 선율을 더해 여유와 부드러움을 품었다. 

2번 트랙 'Hey Sun'에서는 돋보이는 비트에 공간감이 충만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곡의 중간에 강력한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가 등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이내 잔잔해지면서 기존의 무드를 이어간다. 

3번 트랙 'Silverhair Express'는 오혁의 스캣 아래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과 플루트 등 다양한 효과음으로 채워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느낌을 담은 트랙으로 따뜻함과 여유로움을 품었다.

4번 트랙 'Flat Dog'는 제목부터 인상적이었다. Flat Dog를 검색해보니 악어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도입부를 들으면 동요 '악어떼가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든다. 음절을 끊어서 읊조리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오혁의 보컬과 뒤이어 나오는 실험적인 사운드가 곡의 색깔을 분명히 해준다.

앨범의 정점은 마지막 트랙인 'New Born'이다. 9분이라는 압도적인 길이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운드 디자인이 묘미라 할 수 있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물결이 점점 거세져 파도처럼 일렁이는 곡으로 실험적인 도전도 엿보이는 트랙이다. 공간감을 살려주는 사운드의 배치가 지루할 수 있는 9분이라는 길이를 밀도 있게 채워준다.

suddenly they’re all disappeared
어느 순간 그들은 사라졌다

take a look and no one is there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finally i am free
드디어 나는 자유로워졌다

sun is out but my mind is blind
해가 떴지만 아무 생각이 없다 

hey Jesus there?
예수님 거기 계신가요?

can you hear me?
제가 들리시나요?

i am lost
길을 잃었다

'Help' 가사 중에서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앨범

혁오의 앨범은 더욱 성숙해졌다. 오크통에서 숙성되며 은은한 맬론 색에서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위스키처럼 혁오는 농익은 자신들의 색깔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혁오의 예술성과 사회를 향한 메시지와 함께 녹여낸 앨범 <사랑으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

"일상과 고립된 장소에서 앨범만 만들었어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순간의 사운드에 집중했던 거 같습니다. 작업하는 방식에서 달라진 건 완결된 데모가 없었다는 건데, 데모를 만들고 작업을 하면 데모에 항상 갇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힙스터 밴드'의 틀에 갇힐까봐 걱정하던 팬들의 생각은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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